환경소식

[스크랩] 생명의 자궁에서 무덤으로

2006. 5. 29. 06:05
생명의 자궁에서 생명의 무덤으로

▲ 살아있는 개펄(사진 위)과 생명이 죽어서 썩어가는 개펄(사진 아래)
ⓒ 맛객
갯벌에 쪼그리고 앉아서 사진을 찍는 모습이 동네 주민들의 눈에는 별스럽게 보였나 보다. 수문 옆에서 작업을 하는 주민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이고 자들은 쩌그에 뭐가 있다고…."

▲ 조개 캐러 가는 마을 주민, 안개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고 있다
ⓒ 맛객
물길 때문에 더 이상 바다 쪽으로 나갈 수가 없자 자리를 옮겼다. 오후로 접어들자 갯벌에는 안개바람이 드세진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안개가 조금 사라지자 저 멀리에서 갯벌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한눈에 봐도 조개 캐러 가는 동네 주민이 분명했다. 나도 그 분들 쪽으로 걸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호기심 있는 표정으로 처다 본다.

"안녕하세요? 조개 캐러 가세요?
"예에~"

"뭐가 많이 나와요?"
"생합이죠."

"이렇게 한번 나가면 얼마나 잡으세요?"
"별로 못 잡아요. 값도 많이 떨어지고."

"키로에 어느 정도 하는데요?"
"2천원. 한 달 전까지만 해도 5천원 했는데 더 떨어졌네요. 하루 2만원 벌기도 벅차요."

그 전에는 하루에 5~6만원은 기본으로 벌었다고 한다. 지금은 물막이가 완료 된 후 조개들을 한꺼번에 잡아서 가격이 많이 떨어졌다. 그나마 이제 조개잡이 일도 곧 그만둬야 할 형편이다. 6월 장마가 시작되면 남아있던 생명들이 한꺼번에 죽을 것은 뻔하기 때문이다. 비는 생명을 살리지만 새만금에서 만큼은 예외이다.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해 물었다.

"갯벌 없애는데 찬성한 주민도 있었어요?"
"앉아 있는 사람들이나 모를까 바다에 나가는 사람은 다 반대했제. 여그서 돈이 나오는디…. 인자 뭘 먹고 살아야 할지 몰르겄어."

다른 할머니 한분이 명쾌하게 말을 꺼낸다.

"이거(새만금 간척사업) 오산이여. 우리 같은 늙은이야 죽으면 그만이지만 이것을 뭐 할라고 막아."

이곳을 삶의 터전삼아 평생 살아왔던 주민들에게 있어 새만금 파괴는 누구보다 더 가슴 아픈 일이다.

▲ 조개가 있는 곳까지 무려 한 시간여 걸어가고 있다
ⓒ 맛객
물길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아주머니들은 장화를 신었기 때문에 문제없이 물을 건넌다. 여기서 돌아갈 수는 없는 일, 난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어 올렸다. 맨발로 한참을 걸었다. 다른 지역의 갯벌과 달리 조개껍질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참 순수한 갯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도대체 조개잡이 장소는 어디란 말인가? 아주머니들의 걸음은 멈출 기미가 안 보인다. 이렇게 멀리 나가지 않으면 조개를 잡을 수가 없다고 한다. 안개 때문에 몇 미터만 떨어져도 앞 사람이 분간하기 힘들 정도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조개잡이 일을 하셨다는 할머니 한분이 안개를 보면서 말씀 하신다.

"요상허네 아침에는 안개가 껴도 저녁에는 안 끼는디."

어제 이곳에는 비가 내렸다고 한다. 아마도 그 비가 증발되면서 안개가 낀 듯싶다. 죽어있는 조개 사진을 찍느라 뒤처졌더니 아주머니 한분이 걱정해 준다.

"총각오빠 우리 잘 따라 오라고 해! 길 잊어 먹으면 안 되니께."

한 아주머니가 약밥을 꺼내더니 먹으라고 준다. 또 한 아주머니는 호박즙을 주고 어떤 아주머니는 사탕도 준다. 그렇게 시골 아주머니들의 잔정을 확인하면서 한 시간여 걸었다. 아주머니들이 갑자기 우왕좌왕 하신다. 안개로 인해 조개 잡는 장소를 잃어버린 듯하다.

"맨날 오는 우리도 길을 잃어버리네."

▲ 조개 캐는 도구인 '그레'를 이용하고 있다. 새만금에서 이런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 맛객
희미하게 드러나는 민가섬(조그만 섬)을 지나자 드디어 생합이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거전리 포구에서 한 시간여 걸어온 듯하다. 바닷물과 갯벌의 경계에 있는 그곳에서 아주머니들은 그레질을 시작한다. 그레를 개펄 5~10cm 속으로 넣고 잡아끌면 딱딱한 게 걸리는데 그게 바로 생합이다.

"많이 나와요?"
"물이 써지(빠지지) 않아서 잘 안나오네요."

▲ 그레가 지나가자 생합 한 개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 맛객
옆에서 지켜보아도 그레를 5m 끌어야 생합 한두 개 나올 뿐이다. 그레질로 뒤집어진 개펄은 군데군데가 검은색으로 변해 있다. 썩었기 때문이다. 검은 개펄 부위에는 어김없이 폐사된 동죽이 있었는데 썩은 조갯살이 보였다.

▲ 죽은 동죽
ⓒ 맛객
▲ 죽은지 별로 지나지 않아서 속살이 보인다
ⓒ 맛객
▲ 동죽 껍데기가 갯벌 위를 뒤덮고 있다
ⓒ 맛객
아주머니 말로는 생합하고 달리 하루만 물이 없어도 죽는다고 한다. 죽은 동죽을 손으로 만졌더니 썩은 내가 코를 찌른다. 바닷물에 씻어도 냄새가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갯벌 위에는 동죽 껍데기로 뒤덮여 있다. 죽은 동죽 때문에 까맣게 썩어가고 이다.

"아주머니 여기 조개껍데기들 동죽 맞죠?
"예에 동죽이네요."

"예전에도 이렇게 껍데기가 많았어요?
"없었어요."

"그럼 물막이 한 뒤로 다 죽은 것들이네요?
"예에 그렇죠."

▲ 사방팔방 끝이 보이지 않는 새만금 갯벌
ⓒ 맛객
주위를 둘러보았다. 끝도 없이 펼쳐진 갯벌, 그 곳에 서 있으니 만약에 내가 개발자라 해도 군침 흘리지 않을 수가 없겠구나 생각 들었다. 평지로서 이만큼 드넓은 땅이 또 어디 있으랴. 그렇기에 그 어떤 환경적인 논리도 귀에 들어가지 않겠구나 싶다.

새만금 간척사업을 지지 하는 사람들은 "잘 개발해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게 국익에 도움 되지 않느냐"라고 말한다. 그 논리에 맞게 경제적인 측면으로 따진다면 경복궁도 개발해서 고층빌딩을 세우는 게 낫지 않을까? 덕수궁도 창경궁도. 경복궁을 허물고 빌딩 세운다면 미친 짓이라고 할 텐데,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자연자원을 파괴하는 건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인정해 주어야 하는 걸까?

문화자원과 자연자원 둘 다 소중하다. 어쩌면 갈수록 환경재앙에 직면해 있는 현세에는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는 자연자원이 더 소중할 수도 있다. 그런데 왜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서 이 땅의 자연자원을 파괴하는지 꼭 그래야만 하는 건지. 그럴 자격이 있는 건지, 새만금을 죽인 그 분들께 묻지 않을 수가 없다.

개발보다 어렵고 위대한 건 있는 그대로 보존하고 잘 지키는 일이다.

일간지
출처 : Attaboy
글쓴이 : Attaboy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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