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소식

물 이야기, 칠레

2006. 4. 8. 06:12
물정책 실험실, 칠레

시장 메커니즘을 도입한 수법(水法)과 수도사업 민영화 정책

칠레는 우리에게 지구 반대편에 있는 먼 나라로만 여겨졌다. 최근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돼 칠레는 우리에게 각별한 나라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여러 나라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기 때문에 칠레에게 있어 우리나라는 그렇게 각별한 나라도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칠레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은 좁고 긴 국토와 최근 수입이 늘고 있는 칠레산 포도주일 것이다. 하지만 칠레는 물 관리정책과 수법(水法)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나라다. 그것은 1981년에 칠레가 시장 메커니즘을 도입한 여러 가지 다양한 수법을 제정한 데 이어 수도사업을 완전히 민영화했기 때문이다. 칠레를 ‘물 정책의 실험실’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포도주의 명가, 칠레
국토 면적 75만6626㎢, 인구 1549만 명이 살고 있는 칠레. 동쪽은 안데스산맥의 능선, 서쪽은 태평양과 접한 남북이 4200km, 동서는 평균 180km의 좁고 긴 국토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북쪽의 사막에서 남쪽의 빙하지대까지 다양한 기후를 보이고 있다. 지형적 차이가 크기 때문에 북부지역은 아타카마사막·타라파카사막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세계에서 손꼽히는 건조지역이며 수도가 있는 산티아고를 비롯한 중부지역은 여름에 건조하고 겨울에 비가 많은 지중해성 기후를 보이고 있다. 칠레의 농업지대는 주로 이 중부지역이고, 남쪽은 기후조건이 열악해서 목축업을 한다. 중부지역은 토양이 비옥하지만 강수량이 부족해서 일찍부터 관개농업이 성행했다. 하지만 남부지역은 2000~5000mm의 강수량을 보이는 다우지역이고 상록활엽수·침엽수로 이뤄진 세계에서 빼어난 삼림지대다.
1973년 9월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피노체트 대통령이 이끄는 군사평의회가 16년간의 독재정치를 했으며 이후 1989년 12월 실시된 선거에서 아일윈 후보가 당선되면서 16년 만에 군정이 종식됐다. 피노체트는 미국에서 공부한 자유시장주의 경제학자들(흔히 ‘시카고 보이’라고 지칭)을 기용해서 경제구조를 개혁했다. 이로 인해 독재정권 하에 있었지만 칠레는 전력을 비롯한 수자원 분야에서 시장경제를 도입하게 됐다. 수자원정책 분야에서 칠레의 1981년 수법은 세계은행의 주도에 따라 ‘시카고 보이’들이 시장주의에 기초한 법률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칠레의 주요 산업은 세계 제일의 구리 생산으로 수출 총액의 약 40% 이상을 차지해 국가경제의 기간이 되고 있다. 중부지역을 중심으로 한 농경지(국토의 약 5%)에서는 밀·귀리·보리·쌀 등이 재배되고 있으며 국토의 15%가량 초지에서 소·양 등 목축이 이뤄지고 있다. 특히 포도주는 주요한 수출품으로 세계적으로 그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우리나라와는 1962년에 수교한 이래 최근 FTA 협약의 체결로 우리 공산품과 칠레의 농산물에 대한 교류가 부쩍 늘어나고 있고, 산티아고의 도심에는 우리나라에서 만든 자동차가 가장 많이 눈에 띄는 등 경제적 교류가 활발한 상태다.

칠레는 왜 수자원정책에서 자주 인용되는가
칠레는 수자원관리에 있어 시장의 유용성을 장려하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부분적으로 칠레에서 시장기능에 의한 물 배분이 가능한 것은 이전 가능한 ‘물 이용권(water use rights)’에 대한 시스템이 1981년에 재정립됐기 때문이다. 이들 물이용에 관한 권리는 토지이용 및 토지소유와 구분돼 있기 때문에 수권(water rights)은 상당히 자유롭게 거래될 수 있다. 이러한 물 이용권의 법제화는 토지의 사유재산권 강화와 무역자유화를 포함한 칠레 경제의 일련의 개혁 시리즈와 일치하고 있다.
수자원정책이 세계의 관심을 끄는 주요 내용은 경제적 재화로서 물을 다루고 있다는 점, 수리권을 거래를 통해 물 부족을 다루고 있다는 점, 물 시장을 활성화해서 물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일련의 정책들이다. 따라서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물 관련 정책이 칠레에서 성공적으로 수행될 수 있는지를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칠레의 특이한 수자원제도
칠레는 전통적으로 식민지시대부터 도수터널과 강의 물을 공유하기 위해 개인적인 수자원개발과 사유권의 인정이라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토지개혁 기간 동안 수정된 1969년의 수법(水法)은 관개용수는 토지와 한 몸이라는 것과 수자원에 대해 주 정부의 규제를 명령하고 있다. 이러한 법은 ‘1981년 수법’에 의해 마침표를 찍게 된다. 이 법은 물의 이용을 위해 사적으로 이전 가능한 재산권적 행사를 가능하게 했다.
1981년의 수법은 공적 사용을 위한 국가의 자원이지만 물의 이용을 위해 항구적이고 이전가능한 권리가 개인에게 허가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이른바 ‘물 이용권’은 청원에 의해 정부가 허가할 수도 있고, 개인 소유자로부터 구입할 수도 있으며 또 전통적인 사용(관행수리권)에 기초해 보유할 수도 있다. 여기서의 권리는 영구적이거나 일시적인 것으로 정의될 수 있다. 칠레의 대부분의 유역에서, 특히 북쪽 및 중앙계곡에서는 모든 물의 공급원은 이미 영구적인 사용권으로 배분돼 더 이상의 물을 배분할 여유가 없다. 일시적인 권리는 잉여수자원에 대해 발급되며, 항구적인 물이용자의 수요를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가능하다. 댐과 호수의 물은 유량을 엄격히 규제함으로써 필요한 용수 이상으로 물을 공급하지 않아 임시적인 물이용권의 대상이 아니다.
물이용권에는 재산세가 부가되지 않는다. 그러나 토지는 관개용수의 가치를 포함한 토지의 생산적 가치에 따라 세금이 부과된다. 또한 물이용권의 양도에 따른 판매세는 없지만 변호사, 공증, 그리고 등기소에 필요한 수수료는 지불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칠레에서 관개용수의 개발은 민간부분에 의해 주도돼 왔다. 100만ha 이상이 민간투자에 의해 관개됐는데, 이들은 대부분 소규모 하천시스템에서 이뤄졌다. 모든 민간에 의해 개발된 관개시스템과 주 정부에 의해 개발된 관개시스템의 대부분은 ‘물사용자협회(WUAs)’라는 독립적인 기관에 의해 소유되고 통제된다. 이 ‘물사용자협회’는 회원에 의해 소유되고 관리된다. 물 사용자는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뉘는데, 공통의 수원을 사용하는 물 사용자들로 구성되는 물 공동체(Water Community), 공통의 관개수로를 공유하는 관개자들에게 서비스를 공급하는 관개협회(Irrigation Association), 공유 하천이나 강의 한 구역에 대해 모든 사용자와 사용자 협회로 구성된 JDVs(Juntas de vigilancia) 등이다. 수자원국(DGA)을 포함한 건설부(Ministry of Public Works)가 수자원관리에서 하나의 중요한 역할은 한다. 관개국은 계획, 건설의 감독, 공공부문의 관개 인프라의 운영을 책임진다. 국가관개위원회(National Irrigation Commission)는 재경부·건설부·농림부·계획부로 구성된 경제부가 관장하는 각료위원회이다.
칠레는 전통적으로 상·하수도 보급률이 매우 높다. 도시의 98%, 농촌의 75%가 상수도로 물 공급을 받으며, 도시 가구의 80%가 하수처리시스템에 연결돼 있다. 1990년에 중앙정부 주도의 상·하수도 서비스 기능이 자치적으로 운영되는 11개의 지역 상·하수도 회사로 분리됐다. 이들 독립적인 물 회사는 대도시에 상·하수도를 제공하도록 법에 의해 의무가 지워졌다. 상수도 요금은 공급비용, 자본의 수익률에 기초하여 부과되며, 5년마다 재검토된다. 또한 수요관리를 위해 성수기에는 프리미엄 요금제가 도입됐다. 이들 물 공급회사는 과거에 SENDOS(국가 상·하수도 서비스)에 의해 보유된 물이용권을 승계했다. 이 물이용권 중의 일부는 절대적 권리(priority right)로 물의 취수에서 부족 시기에는 비례적으로 감축되는 다른 이용권과는 달리 그대로 유지된다.
현재 칠레 전역 13개 수도사업지구의 물 공급 및 하수도 사업의 95.5%가 민영화됐다. 2003년 말 기준으로 칠레의 물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사업체를 지분별로 보면 스페인 기업인 아그바그룹(Agbar Group)이 39.6%, 영국계 테임스워터가 19.8%, 파이넌스 콘소르티움이 16.8%, 솔라리스그룹이 8.6%를 차지하고 있다. 수도 산티아고 지역 등 다섯 곳은 완전히 민영화됐고 나머지 여덟 곳은 30년 양허계약으로 운영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경제개발에 한창이던 1960년 중반부터 20년간 칠레는 정치적 혼란을 겪었고 그로 인해 칠레 경제는 20년을 잃어 버렸다. 그러나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일어난 개혁은 이제 그 꽃을 피우고 있다. 오늘날 칠레 경제는 도약을 마치고 고도성장의 길로 접어들었고, 사람들의 표정에도 자신감이 역력하다. 유럽의 전통으로 인해 국민의식 수준이 높은 데다 정치는 안정돼 있고 자원은 풍부하니 앞날은 밝은 것이다. 아르헨티나·브라질·베네수엘라 등 다른 남미 국가들이 좌파정책의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데 비해 자유무역과 시장경제의 길을 택한 칠레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칠레의 수법과 물 정책이 그런 격동의 한복판에 있었다는 사실 또한 흥미롭다. 우리나라의 수자원정책을 둘러싼 최근의 수리권 분쟁, 상·하류간의 갈등, 댐 정책에서의 어려움 등의 측면에서 칠레의 물 관련법과 정책의 혁신적인 추진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이 글은 한국수자원공사 물 문화지 ‘물, 자연 그리고 사람’ (2005.11호)에도 게재됐습니다.

*출처: (주)환경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