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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온돌의 내력

2013. 3. 10. 12:28
 온돌의 내력 (아랫목은 따뜻하고 윗목은 차게, 水昇火降)

온돌은 우리겨레의 4천년 이상 역사 속에서 숨어있는 주택문화의 핵심이다. 서양의 '본만'이 3백년 전에 중앙 난 방식 방법을 발견하기 이전, 영하 25℃를 내려가는 혹한에서도 우리조상들은 따뜻한 봄날처럼 지낼 수 있게 한 방 구조이다. 고구려 후기 즙안 소재 동대자 유적에서는 온돌 구들 골의 폭이 2m여서 그 위에서 사람들이 생활했음을 보여준다. 방구들 높이도 20∼25㎝로써 얕은 연기 통로가 있었다.

서울근교와 부여근방 부소산성에서도 온돌방구조의 유적이 발견되어 백제의 방 구조를 알 수가 있다. 발해의 수도 상경용천부 에서도 온돌이 발견된바 있다. 방 한쪽에 ㄱ자형의 구부러진 1∼2개의 방고래를 통하여 아궁이에서 굴뚝까지 연결되어 있다. 고대시대 온돌유적으로는 함경도서쪽, 평안북도 신의주등 북방의 한랭한 지방에서 발견 되었다한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는 온돌에 관한 시가 있으며, 동문선의 공주등정기의 가사 속에서도 온돌방의 완성형태를 표명하는 내용이 전한다. 제주도에도 18세기에 간행된 이익의 성호사설에 의하면, 병자와 노인만의 섭생용 황토 방이 부분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1950년 이후 연탄 아궁이가 보급되면서 황토구들방은 점차 살아졌으나, 이는 일본으로 건너가고, 다시 유럽으로 수출되고 있다. 김치의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아서 수출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옛 우리조상들의 지혜의 결정체를 왜 무조건 옛것이란 이유로 마구 배척만 하는지 그냥 답답하기만 하다. 정읍시 입압면 진등 마을에 25년 전부터 바라만 봐도 병이 낫는다는 최영난 할머니의 소문이 있는데, 이 마을을 다녀가면 중풍, 관절염을 않던 노부인들이 통증이 완화되고 몸이 가벼워진 것이 소문이 나서 신통력으로까지 확대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운모편암 구들장과 황토 및 솔잎의 덕이었을 것이리라. 옛날 시골아낙네들은 문화혜택이 적었으므로 위생적으로 청결할 수가 없었겠지만, 현대 도시인들에게 많은 각종질병 특히 부인병이 거의 없었다. 우리는 부엌에 앉아서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시골아낙네들의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가 있을 것이다. 흙(土)으로 만든 부뚜막에 무쇠 솥(金)을 걸고 그 안에 물(水)을 붓고 나무(木)로 불(火)을 지피니 음양오행이 조화를 이루어 몸의 기운을 조절하여 주었으니 건강했으리라.

출처 : 바다愛산愛
글쓴이 : jambau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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