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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행복은 평범한 조건 속에 있다

2010. 6. 10. 10:04

욕망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자본주의 사회, 혼자 사는 것이 제일 편하게 여겨지는 ‘쿨한’ 사회, 독신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에 달하는 한국 사회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이제 ‘개인 너머’를 고민해야 할 때다.

 

 

 

1950년대 후반, 오클라호마 의대의 스튜어트 울프 교수는 펜실베이니아 로제토 지방 근처에 강연을 갔다가 지역 의사에게 흥미로운 사실을 전해들었다. 그 의사는 17년 동안이나 그 지역에서 환자들을 진료했는데, 이상하게도 로제토 지역에 사는 65세 미만의 사람들 중에는 심장마비 환자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1950년대는 콜레스테롤 저하제와 심장병 예방을 위한 치료법이 아직 개발되기 전으로, 당시 65세 미만 미국 남성의 사망 원인 중 선두를 달리고 있던 것이 심장마비였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의사가 심장마비 환자를 거의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울프는 즉시 학교의 지원을 받아 조사에 들어갔다. 로제토의 모든 사람들을 검진한 결과는 매우 놀라웠다. 로제토에서 55세 이하의 사람들 중 누구도 심장마비로 죽지 않았을 뿐더러 심장 질환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65세 이상의 경우에도 로제토의 심장마비 사망률은 미국 평균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모든 사망 원인을 종합해볼 때, 로제토의 사망률은 평균치보다 30~35퍼센트나 낮았다.


로제토에선 무슨 일이?

울프는 로제토 사람들이 심장 질환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수명을 다하는 이유를 찾기 위해 다방면의 가설을 세웠다. 로제토 지방 사람들은 대부분 이탈리아에서 건너왔는데 혹시 미국인들과 식생활이 다르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면 특별한 운동으로 관리를 할까? 그것도 아니었다. 로제토에 거주하는 남자들은 하루 종일 함석 채석장에서 일했고, 여자들은 블라우스 공장에서 일했다. 요가나 조깅을 하며 건강에 신경 쓸 시간적 여유조차 없었다. 오히려 담배를 뻑뻑 피워댔고 비만과 맞서 싸우느라 허덕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탈리아인 특유의 유전적 요소가 작용했나? 이를 증명하기 위해 다른 지역에 흩어져 사는 이탈리아 출신들에 대한 추적 조사가 시작됐다. 그런데 다른 지역 이탈리아인들에게는 이러한 특징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들이 살고 있는 펜실베이니아 동부의 언덕배기가 천혜의 자연 조건을 가지고 있는 걸까?

울프는 로제토에서 가장 가까운 두 마을을 비교 조사했다. 두 마을 다 로제토와 면적이 비슷했고 비슷한 수의 유럽 이민자가 모여 살고 있었지만 두 마을의 심장마비 환자 사망률은 로제토의 세 배나 됐다. 울프는 로제토의 비밀이 식생활이나 운동, 유전, 지역적 특성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로제토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난관에 봉착한 울프는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한번 로제토 마을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로제토에 처음 갔던 날, 삼대가 모여앉아 식사하던 모습, 사람들이 거리를 오가는 모습, 그리고 현관 앞 의자에 앉아 주민들이 잡담을 나누던 모습이 떠올랐다.

로제토 마을 사람들은 서로를 방문하고 길을 걷다가 멈춰 서서 잡담을 나누며 뒤뜰에서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는다. 한 지붕 아래 삼대가 모여 사는 집이 꽤 많고 그래서인지 나이 든 사람들이 젊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또 고향 마을에 있는 교회를 본떠 만든 카르멜산 성모 교회가 사람들을 결속시키고 있었다. 더욱이 고작 2천여 명이 사는 마을에 시민의 모임이 스물두 개나 되었고, 이들 공동체의 평등주의적인 정서가 부유한 사람들로 하여금 거들먹거리지 못하게 견제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기능을 하고 있었다.

울프는 로제토 마을의 사회적인 구조 밑에 깔린 일종의 ‘확장된 가족 집단’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탈리아 남부의 농노 문화를 펜실베이니아 동부 언덕으로 옮겨온 로제토 사람들은 현대사회의 압박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기에 충분할 만큼 강력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해놓고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로제토 사람들은 그들이 만들어낸 언덕 위의 작은 세계 덕분에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비밀은 로제토 마을 자체였다!


개인의 건강은 ‘개인 너머’에 있다

 

 

 

울프와 동료 브룬은 자신들이 발견한 이 마법 같은 일을 의료계에 발표했지만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하긴 ‘장수는 식습관, 운동, 적절한 치료, 유전자에 의해 좌우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던 당시 학계 풍토에서, 이런 연구 결과는 뜬구름 잡는 얘기로 들렸을 것이다.

복잡한 표에 담긴 방대한 데이터를 제시하며 유전자와 신체적 관계를 파고드는 동료들 앞에서, 사람들이 거리에 서서 대화를 나누고 삼대가 한 지붕 아래 사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라고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당시엔 어느 누구도 건강을 ‘공동체’라는 개념과 연관 지어 생각하지 않았다.

울프와 브룬은 건강과 심장마비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동료 의료진을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설득해야만 했다. 치료를 할 때 고립된 한 개인의 선택이나 행동만 바라보는 한 누가 왜 건강한지를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제 누군가를 치료하려면 ‘개인 너머’를 바라봐야 한다,

환자가 속한 문화를 이해해야 하고 그들의 친구와 가족이 누구인지, 어디 출신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나아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가치관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력까지 인정해야 한다고 말이다.

‘개인 너머’에 대한 성찰은 비단 건강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성인 남녀 8백14명의 삶을 70여 년간 추적 조사한 ‘하버드 대학교 성인 발달 연구’도 개인의 건강과 행복에 인간관계가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성인 발달 연구에서 건강한 노화를 예견하는 일곱 가지 조건으로 꼽은 것은 고통에 대응하는 성숙한 방어기제, 교육, 안정된 결혼생활, 금연, 금주, 운동, 알맞은 체중 등이다. 50대에 이중 세 가지 이상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80세에 ‘행복하고 건강한’ 상태에 이른 사례는 전혀 없었다.

특히 이 조건 중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고통에 대응하는 성숙한 방어기제. 조사 결과에 의하면 비관론자들이 낙관주의자들에 비해 훨씬 신체적으로 고통을 받는데, 이는 비관론자들이 다른 사람들과 거의 교류를 하지 않고 스스로를 잘 돌보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 연구의 총책임자인 조지 베일런트 교수는 “ ‘47세 즈음까지 형성된 인간관계’는 방어기제를 제외한 어떤 변수들보다 훨씬 이후의 인생을 예견하는 데 중요한 지표가 되었다. 인간관계 중에서도 특히 형제자매 간의 우애가 큰 영향력을 미쳤다.

65세까지 충만한 삶을 살았던 연구 대상자들 중 93퍼센트는 어린 시절 형제자매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던 것으로 조사됐다”라고 밝히면서 “행복하고 건강하게 나이 들어갈지를 결정짓는 것은 뛰어난 지적 능력이나 계급이 아니라 인간관계”라고 강조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부모가 아니더라도 형제자매나 친척, 친구, 동료, 이웃과 따뜻한 인간관계를 맺는 것은 행복의 필수 조건이다. 조지 베일런트 교수는 성인 발달 연구 대상자들에게 배운 점이 무엇인가를 묻는 한 기자의 질문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라는 사실”이라고 답했다.


그들은 어떻게 그토록 오래 행복했을까?

 
인간의 뇌는 복잡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정교하게 발달해왔다. 사회성이란 곧 개인이 타인, 환경과 교감하는 능력일 것이다. 욕망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자본주의 사회, 생산성과 능률이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는 한국 사회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제 수명을 다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당신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습니까?’라는 주제로 독일에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3분의 2가량이 ‘부유한 사회보다 책임과 연대감이 형성되어 있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고 답했다고 한다.

‘행복해지는 것’과 ‘올바르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대답한 사람이 ‘부자가 되는 것’, ‘많은 것을 소유하는 삶’을 택한 응답자보다 훨씬 많았다.

어쩌면 물질적 번영이 우선시되는 사회이기에 오히려 밀접한 사회적 관계를 맺고자 하는 개인의 열망이 더욱 간절한지도 모르겠다. ‘함께하는 것’, ‘더불어 사는 것’, ‘교감하는 것’. 언제나 그렇듯 행복은 가장 평범한 조건 속에 있었다.

 

출처 : 브레인 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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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雪中孤松
글쓴이 : Attaboy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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